구 일본인농장 창고
이 건물은 군산 지역의 일본인 대지주가 귀중품을 보관하기 위해 철근 콘크리트조로
견고하게 지었다. 입구에는 미국에서 들여온 철제 금고문이 달려 있고 창문에는 이중 잠금 장치가 되어 있다.
이러한 형태 때문에 한국전쟁 때에는 군산에 주둔한 인민군들이 옥구 지역 우익인사들을 감금하는 데 사용되기도
하였다. 현금과 서류뿐만 아니라 일본인 대지주가 불법 수집한 수많은 한국의 서화와 도자기 등 골동품을
보관하던 건물로, 일본인이 자행한 수탈의 역사를 잘 간직하고 있다.
발산리 석등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높이 2.5m이다. 원래 완주군 고산면 삼기리 봉림사터에
있던 것을 일제시대에 일본인 농장이었던 이곳 발산초등학교 뒷뜰로 옮겨왔다.
석등 밑 받침돌에는 여덟 개의 연꽃잎을 엎어 새겼고, 원통형 기둥 돌에는 구름 속에 요동치는 힘찬 용의 모습을
조각했는데 이는 우리나라 유일한 예이다.
육각부도
1903년 이자리에 농장을 개설한 일본인 시마따니 야소야라는 사람이 위치을 알 수 없는 절터에서 가져온 것으로 전한다.
발산리 오층석탑
이 탑은 고려시대 석탑으로 처음엔 이중 기단 위에 세운 오층석탑이었으나, 지금은 사층까지만
남아 있다. 받침돌은 신라석탑 모양을 본 따 만들었으며, 네 개의 기둥을 새긴 탑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었다. 삼단 받침의 지붕돌은 끝이 약간 위로 들려 곡선을 그리고 있어 고려 탑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이영춘가옥
일제강점기때 전국최대의 농장주인 구마모토에 의하여 1920년대에 건축 된 것으로서 한식, 양식, 일식의
건축양식이 복합된 모습으로 근대 새로운 주거문화가 들어오는 양상을 보여주고있다.
외부형태에 있어서는 유럽의 형식을 따르며 평면구조는 일식의 중복도형을 바탕으로 양식의 응접실과 한식의
온돌방이 결합된 형태이다.
이 건물은 일제시대 농장주들에 의한 토지수탈의 실상을 보여주는 역사적 의미와 함께 해방 후 우리나라 농촌보건위생의 선구자
쌍천(雙泉) 이영춘(李永春) 박사가 이용했다는 의료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영춘 박사의 생가지 마을